2010년 11월 17일 수요일

인식과 대상


우리에게 대상이라고 여겨지는 것이 등장하면 우리는 우선 관찰을 한다. 색은, 크기는, 형태는 냄새는 기타 등등 오감과 개념을 이용하여 그것을 상세히 기록해 둔다. 그리고 그 기록과 그 대상이 일치하는지에 대한 판단을 하게 되는데, 그 결과 우리는 단일한 대상을 알게 된다. 여기에는 순수하게 과학적인 방법이 총 동원된 듯 객관적이라 여겨져, 주관적인 것이 끼일 틈이 없게 보인다.

 

그런데 이런 명백한 과정의 내부를 살펴 본다면, 대상의 출현에서부터, 실은 매우 주관적인 것들 이 작용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해 본다면, 대상 그 자체를 규정한다는 것은 우리의 판단이 개입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는 것으로서, 대상에 대한 척도들이 대상 그 자체가 아닌, 관찰자인 우리에게서 유래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본다면, 사물들은 형태를 불문하고, 무게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저울로 그 각각의 무게를 수치화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무게를 대상과 일치(관계)시킬 때에, 대상과 그의 속성의 '상호전환'이라는 모순이 발생하게 된다. 이 모순은 대상과 그의 속성들의 관계를 부정하면서도 동시에 인정을 하고 있다.'

 

10kg하는 쌀을 보면, '쌀은 10kg이다.' 와 '10kg은 쌀이다.'라는 두 개의 명제가 만들어 진다. 첫 번째 문장은 주어인 쌀의 속성인 무게가 나타난 경우이며, 두 번째 문장은 주어의 속성이 대상으로 나타난 경우가 된다. 이 양자의 차이점을 구체적으로 본다면, (1)은 쌀의 수 많은 속성 중에 무게가 우리에게 들어난 것이라면, (2)에서의 쌀은 그의 수많은 속성 혹은 가능성은 무시되고, 오로지 무게 10kg을 현상하는 쌀로만 나타나는 것으로, 이유는 쌀이 무게의 속성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두 문장을 합쳐서 해석을 해보면, 쌀은 그 자체가 아닌, 무게로 우리에게 나타난다. 이것을 우리는 그의 속성이라고 한다. 그 다음 쌀은 무게의 현상체로서 나타난다. 우리는 그것을 무게의 현상체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처음 속성이라고 했던 무게는 속성이 아닌 대상이 된다. 이처럼 대상의 속성이라는 것은 속성이면서 동시에 척도라는 본체가 됨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대상이라는 것은 이미, 관찰자에 의하여 조작된 후에, 있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대상이 있다는 것은 관찰자가 또한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서, 관찰자는 더 이상 대상에 수동적으로는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제 사물의 속성은 사물에서 유래한 것이 아닌, 관찰자인 우리에게서 유래한 것임이 드러남으로써, 대상과 그의 척도를 찾아서 밖으로 갈 필요가 없이, 속성에 대한 속성으로서 비교를 하면 된다. 이것은 또한 대상이라는 것은 매체로서 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인데, 여기서 매체의 특징은 순수한 부정이라고 하겠다. 이처럼 대상이 직접적으로 자신을 들어내는 것이 아닌, 우리를 통하여 들어난다고 할 때에 우리의 의식 역시 매체로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대상이라고 부르는 것과 우리의 의식이 매체로 있음으로 인하여, 대상과 그에 대한 인식이라는 형태, 즉 이들간의 분리는 더 이상 의미가 없으며, 오히려 이 양자가 단일하게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상과 인식의 단일함은 의식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비로서 의식의 주체성이 성립하게 된다. 즉 대상이 변하면 그에 관한 가 변하기도 하지만, 그 역으로 의 변경으로 대상의 변경을, 그 결과 대상과 지는 항상 일치할 수 밖에 없다.

 

순수한 대상이 결국 지가 됨으로 인해서, 인식행위는 지에 대한 지의 관계가 된다. 또한 이에 대한 척도 역시 순수히 내부적인 것이 된다. 이러한 이유는 인식이 이중적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서 의식과 대상은 분열되어, 단일한 모순체로서 있게 된다. 단일한 모순체로 있다는 것은 보편적으로 있다는 것으로, 여기서 보편의 의미는 시공간을 넘어 존재한다는 것이 아닌, 스스로 자신을 정립한다는 것으로서, 타와의 관계가 없는 절대적인 의미이다.